나는 플라스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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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플라스틱입니다
  • 지영일
  • 승인 2019.09.2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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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지영일 / 가톨릭환경연대 대외협력위원장

플라스틱 바다


나는 누구일까요?
나의 탄생은 1868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구공의 재료였던 코끼리의 상아를 대체할 물질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얻어졌습니다. 미국의 존 하이아트(John. W. Hyatt)가 1869년 최초의 물질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유리와 나무와 같은 자연물질을 대체하며 생활과 산업계 필수재로 자리잡았습니다.

현대 문명의 발달과 일상에서 누리는 인간의 편리에 있어 나를 빼놓고는 가능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대량생산과 다양한 변형성, 저렴한 생산비용과 내구성, 우수한 물질안전성과 내용물 보전성이 장점이기 때문입니다.

나에 대한 우리나라의 소비는 세계 1위, 생산량의 40%가 한 달 미만의 수명을 끝으로 폐기, 1950년부터 2015년까지 65년간 9.5%만 재활용 등등의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자원선별장에서 중간처리를 해도 50~60%가 다시 쓰레기로 취급됩니다. 음식물로 오염이 돼서, 재질이 다른 쓰레기와 혼합되어 있어서…. 그렇게 일부는 소각장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집니다. 다른 것들은 일반 생활쓰레기에 섞여 자원으로 선택받지 못한 채 매립되어 사람들의 곁을 떠납니다.

1천 세대 아파트 기준으로 1주일 동안 나를 쓰레기로 배출하는 양이 약 1.5톤에 이른답니다. 전국적으로 합한다면 엄청나겠군요! 흔히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나 봅니다. “어차피 한 번 쓰고 버리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일 뿐, 아무렇게나 버려도 정부(지자체)나 기업에서 다 모아다가 어떻게든 하겠지. 아니면 자연상태에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분해돼 사라질 수도 있겠고.”

그래서인가 봅니다. 그러나 실상은 나를 잘 몰라서 드는 생각일 뿐. 내가 500년 이상을 산다고 하니 인간에 비하면 거의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산답니다. 나를 발명한 사람은 죽었지만 누구도 아직은 나의 끝을 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관리받거나 관심받는 경우와 달리 마구 버려진 사각지대의 나는 곳곳을 유람한 다음 바다로 향합니다. 어디든 마음껏 돌아다닌 후이죠. UN의 연구에 따르면 해양쓰레기의 20%는 배에서 나오고 80%는 도시에서 흘러든 것들이라고 하네요. 바다에 모인 나는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미세한 해양생물에서부터 거대한 고래까지 죽일 수 있습니다. 육지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조차도 안전하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랍니다. 아주 작게 쪼개지고 보이지도 않게 된 나는 먹이사슬의 원칙에 따라 결국은 다시 인간세상, 사람의 밥상을 거쳐 몸속으로 돌아가 엄연한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다만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협과 고통의 요소로 말이죠. 안타깝지만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답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의 손안에 있을 때, 집과 사무실 등에 놓여 있을 때 잘 관리하고 예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섭섭하게도 솔직히 지금의 상황은 이전과 별반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는 않아요. 여전히 나는 세상에 넘쳐나고 나를 원하는 사람들도 넘쳐납니다. 최근에는 1인 가구 시대에 맞춰 소포장 식자재 및 음료 등을 담기 위해 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외식산업의 성장과 배달문화, 고도화된 택배산업과 유통구조 덕에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갑니다. 아, 이놈의 인기라니!

이쯤에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수많은 나를 빠른 속도로 소비하고 버리고 싶은가? 언제까지?”, “인간은 나 없는 삶은 꿈도 꾸지 못하는가?”, “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가?”, “이제 인간은 여타 모든 생명체와 공존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잊은 것인가?”에 대해. 나는 플라스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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