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과 소나기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것
상태바
강풍과 소나기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것
  • 최원영
  • 승인 2019.09.02 0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6) 하루살이가 하루를 사는 법

 

사람이 보기에 하루살이의 삶은 너무도 짧습니다. 아침에 태어나 다음날 해가 뜨기 전에는 어김없이 죽어야하니까요. 우리는 백년 가까이 사는데 말입니다. 적어도 하루살이보다는 사람들이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느 날 《정호승의 위안》이라는 책을 읽다가 발견한 아래의 문장에서 시선이 멈췄습니다. 그 전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내용이었으니까요.
“하루살이는 하루만 사는데 불행히도 하루 종일 비가 올 때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하루살이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어두운 껍질 속에 갇혀 지냈습니다. 너무도 무료했고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그러나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나를 가두어놓고 있는 두꺼운 껍질을 깨고 나갈 날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바깥세상은 신비로운 햇살이 나를 비추어줄 겁니다. 아름다운 나비들이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기고 있을 겁니다. 하얀 구름과 시원한 바람은 작렬하는 태양의 열기를 식혀줄 겁니다. 더울 때면 커다란 나무의 잎사귀들이 저를 부를 겁니다. 내가 아무런 걱정 없이 창공을 날아다니라고 친구들이 속삭여줄 겁니다. 또한 아름다운 꽃들은 저마다 곱게 단장을 하고 나와 친구하자고 프러포즈할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아무리 어둡고 절망적인 껍질 속의 생활이라고 해도 견딜 수 있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니 힘들 때마다 그런 생각을 일부러 하곤 했다고 말하는 게 더 맞습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세상 밖으로 나갑니다. 설렙니다. 저를 기다리는 수많은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만나고 싶은 친구들 중에서도 해님이 가장 그리웠습니다. 이제까지의 삶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어둠속에서 살아야 했으니까요.
 
용트림을 하며 드디어 껍질이 조금씩 갈라졌습니다. 더 힘을 냈습니다. ‘쫘악!’ 소리를 내며 껍질이 갈라졌습니다. “우와~” 드디어 내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겁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해님은 고사하고 시원한 바람과 하얀 구름조차 보이질 않습니다. 엄청난 소낙비가 쏟아지고 있었던 겁니다. 구름은 시커먼 먹구름의 모습으로 저를 호되게 나무라는 듯합니다. 왜 지금 나왔냐고 꾸중하는 듯이 말입니다. 무서웠습니다. 나뭇잎과 꽃들도 제 살기 바빠서 그런지 저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비를 피해 달아나던 새가 말해줍니다. 이 소나기는 오늘 하루 종일 쏟아진다고요. 아, 어쩌지요? 저는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데, 하루 종일 비라니요?
 
주룩주룩 눈물이 흐릅니다. 그게 눈물인지 빗물인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왜 하필 내가 나오는 날이 이렇게 강풍과 세찬 비로 가득하고 하늘에는 해님 대신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일까? 신은 나를 무척이나 못마땅한가봐! 엄마와 아빠는 내가 조금 더 기다렸다가 나가라고 왜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모두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라고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울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듯 들었습니다. 지금 죽으나 내일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을요. 태어난 것이 원망스럽다며 눈물로 하루를 보내는 대신에 비록 빗속이라고 해도 무언가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삶을 원망하고 분노하며 지내는 삶보다는 훨씬 나은 삶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강풍 때문에 몹시 흔들리고 있는 잎사귀 쪽에서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조심조심 다가가 보니 잎사귀 밑에 비를 피하고 있던 나비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리 와, 친구야. 여긴 안전해.”
 
이렇게 둘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잠시 후 소낙비가 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니, 그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젠 친구가 있으니까요. 아무리 천둥과 번개가 무섭다고 해도, 하루 종일 거센 비가 내린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친구가 있으니까요. 나를 걱정해주고 나를 위로해주는 친구가 바로 내 곁에 있으니까요.
 
살아가다 보면 기쁘고 행복한 일도 있지만 때로는 슬프고 절망적인 일도 있습니다. 하루살이의 ‘하루’를 사람의 ‘백년’이라고 보면 우리의 삶도 하루살이의 삶과 다를 바가 없을 겁니다. 사실 우리가 겪는 고통 중에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들로 인한 고통이 많습니다. 마치 하루살이가 껍질을 깨고 나온 그날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야 알 듯합니다. 강풍과 소나기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것을요. 또한 강풍과 소나기를 맞이하는 태도에 따라 강풍과 소나기가 원망과 분노의 뿌리가 되어 불행한 삶을 살기도 하지만 오히려 멋진 친구를 만나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계기가 되기도 할 겁니다. 몰아치는 강풍 앞에서 줄이 끊긴 연이 되어 추락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강풍 앞에서 더 세차게 돌아가는 바람개비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강풍과 소나기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그것들과 벗이 되어 오히려 바람개비로 살아가는 지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바람개비 같은 삶이 독자여러분과 저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