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put과 output 사이, 우리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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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ut과 output 사이, 우리마음
  • 최원영
  • 승인 2019.08.0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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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풍경 #118. 팝콘기계와 칭기즈 칸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분노’와 ‘애정’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두 개의 감정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애정’이 생기고, 미워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인가 봅니다. 아마도 이 감정들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또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안전을 지켜나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깁니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면서 동시에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이 근원적인 감정이 모두에게 주어져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불행한 삶으로 점철되는 것은 왜 그럴까, 라는 궁금증 말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의 기억이 납니다. 집에서 형들이 팝콘 만드는 기계로 맛있는 팝콘을 만들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린 저는 팝콘이 만들어져 나오는 과정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옥수수와 소금과 같은 재료를 팝콘기계 안에 넣고 전원을 켜면 잠시 후 ‘다다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팝콘이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 어린 저에게는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이 추억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 연결되었습니다. 만약 똑같은 재료를 똑같은 기계 속에 넣었는데, 어떤 때는 맛있는 팝콘이 만들어지지만, 어떤 때는 눅눅한 팝콘이 만들어지는 것은 왜일까요? 재료에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팝콘기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팝콘의 재료는 외부에서 기계로 유입되는 것, 즉 ‘Input’이라고 하면, 만들어져 나온 팝콘은 ‘Output’입니다. Input에서 Output으로의 변환에는 반드시 팝콘기계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따라서 질 높은 결과를 만들어내려면 과정인 팝콘기계의 ‘건강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삶도 같습니다. 팝콘 기계는 곧 우리의 ‘마음’이고, 느닷없이 나타나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위기와 위험과 사고는 ‘Input’입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상황이 엄습할 때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인 ‘화’가 치밀어 오를 테고 당연히 화를 내겠지요.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나 이 ‘화’라는 감정이 ‘팝콘기계’라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해석되는가에 따라 ‘Output’인 ‘행동’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똑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화를 내며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지만, 누군가는 너그럽게 이해하고 미소로 화답할 수 있을 겁니다. 마치 똑같은 옥수수를 넣었지만 팝콘기계가 정상이냐 아니냐에 따라 팝콘의 질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분노가 잘못이 아니라 그 분노의 마음이 표출된 행위가 잘못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느냐는 것은 결국 맞닥뜨린 고약한 상황을 어떻게 내가 ‘해석’하느냐, 라는 마음의 태도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느끼면 언어가 부드러워지고 주위의 모든 사물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와 반대로 분노를 느끼면 언어가 거칠어지고 주위의 모든 사물이 짜증스럽게 보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을 ‘에너지’라고 합니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근원적인 감정인 애정과 분노라는 에너지를 자신에게 유용하게 작동되게 하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라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 에너지가 자신과 주변을 모두 행복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어진 상황(input)과 행동(output) 사이에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인 ‘해석’이 지혜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바꿀 수는 없겠지요. 그러므로 나 스스로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상황의 해석밖에는 없습니다.
예기치 않은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이제부터는 그 상황을 해석하되, 그 해석의 결과가 ‘나’와 ‘상대’, 그리고 주변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석하면 좋겠습니다. 화를 내는 그 순간은 더운 여름날 시원한 냉수를 마시는 것처럼 시원하고 통쾌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후회만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오래 갑니다. 고통과 함께 말입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을 때는 전체 상황을 두루 살피지 못합니다. 마치 돋보기로 작은 물체를 보듯, 나를 화나게 만든 상대에게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자신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착각하고 왜곡시킵니다. 그러나 화가 조금 가라앉은 다음에서야 비로소 주위가 보입니다. 그때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후회할 수밖에 없겠지요.
 
칭기즈 칸은 작은 부족을 거대한 몽고제국으로 만든 영웅 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소 그는 매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가 말을 타고 달릴 때는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있고, 그가 말에서 내리면 매는 하늘로 올라가 그의 주위를 원을 그리듯 맴돕니다. 주인인 그가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마치 경계병처럼 주위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오다가 갈증을 느낀 그가 말을 세우고 돌담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마시려는 순간 매가 그의 손을 내리치는 바람에 물그릇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짜증이 났지만 어깨 위에 앉으려다 잘못 앉았나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다시 그릇에 물을 담아 마시려고 할 때였습니다. 이때에도 매가 달려드는 바람에 그릇을 또 놓치고 말았습니다. 화를 참지 못한 칭기즈 칸은 칼로 매를 베고 말았습니다.
매의 피가 묻은 그릇을 다시 사용할 수가 없게 되자, 돌담 위로 올라가 작은 옹달샘에 입을 대려고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샘 안에 무서운 독사가 웅크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그 물을 마셨으면 자신이 죽었을 겁니다.
그제 서야 칭기즈 칸은 깨달았습니다. 매가 자신을 살리려고 그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아픈 경험을 통해 그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 화가 났을 때 결정만큼은 뒤로 미루리라.”
 
자신을 살리려 한 매를 죽여 버린 아픔을 겪은 후에 그가 내놓은 ‘해석’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이 깨달음으로 인하여 자그마한 부족이 세계제국으로 성장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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