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길이 필요한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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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길이 필요한 인천
  • 박병상
  • 승인 2019.06.13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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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연구소 소장
 


곧 낮과 밤 시간의 길이가 교차하는 하지가 지나간다. 태양 입사각이 절정에 가까워진다는 뜻인데, 걱정이 앞선다. 작년에 하도 놀라 그런가?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폭염의 냄새가 난다. 도시의 여름은 에어컨으로 피할 수 있다지만 그럴수록 바깥 공기는 끈끈하고 무덥다. 어디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좋으련만 초고층 건물이 시야를 난폭하게 가로막는 도시에서 언감생심이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도 방향을 종잡기 어렵다.

어릴 적 동요 《산바람 강바람》은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은 서늘하다고 했다. 나무꾼의 이마에 흐른 땀을 식혀준다고 했는데, 300만 인구의 이마를 식혀줄 바람을 보내줄 산은 인천에 충분히 크거나 넓은 건 아니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강이 없다. 하지만 인천에 바다가 있다. 편서풍 지대의 서편이니 바닷바람이 먼저 다가온다. 방풍림이 소금기를 잡고 보내주는 바람으로 한여름에 시원했다. 적어도 서울보다 덜 더웠고 겨울에는 덜 추웠다.

요즘 인천에서 바닷바람은 느끼지 못한다. 드넓었던 갯벌이 매립돼 사라진 자리를 떡 차지한 초고층 빌딩과 아스팔트는 여름 더위를 가중한다. 바람이 불어와도 질서 없이 솟구친 고층건물의 에어컨 실외기가 공기를 데우고 녹지가 드문 아스팔트로 거침없이 내리 쬐는 뙤약볕은 정거장에서 버스 기다리는 시민들의 뺨에 땀을 흐르게 만든다. 근린공원이나 가로수 아래에서 운동 삼아 걷는 시민들은 바람 없는 여름이 고통스럽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는 ‘바람 길’로 유명하다. 거대한 빙하가 유럽 땅을 편평하게 깎으며 흐르다 많은 흙을 내려놓은 슈투트가르트는 분지 지형이라 바람이 정체되면서 더웠다. 인구와 주택, 자동차와 공업지대가 늘어나면서 대기가 오염되어 불편이 가중되었지만 요즘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한다. 높지 않은 주위의 산에서 부는 바람을 시내로 끌어들인 뒤 강으로 빠져나가게 유도하는 바람길 덕분이라고 전문가는 풀이한다. 실제 슈투트가르트대학은 시당국과 긴밀하게 협조해 바람길을 연구하며 정책에 적용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 모자가 벗겨질 정도의 바람이 언덕에서 불어오면 시내의 공기가 피부로 느낄 정도로 상쾌해진다는데,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대구는 가능한 모양이다. 바람길이 ‘대프리카’의 더위를 식힐 것으로 기대하는데, 그런 바람이 인천을 식히게 만들 수 없을까?
 
가능할 거로 생각하고 싶다. 편서풍이 불어오는 바다가 있고 대구보다 많이 부족하더라도 산이 분명히 있다. 도심을 관통하는 ‘S자 녹지’가 그것이다. 하지만 녹지를 조성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반환된 경인고속도로 일반화구간을 바람이 통과하는 선형의 녹지공간으로 만들자는 제안은 지금도 유효하다. 사용하지 않는 철도를 활용해 바다에서 도심으로 이어지는 바람길을 만들 수 있다. 작은 언덕에서 마을로 녹지를 잇는다면 바람이 이마를 식혀주겠지.
 



 
최근 산림청장은 “미세먼지와 폭염 등의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도시 실정에 맞게 숲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겠고 그런 정책을 펴는 지자체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나아가 바람길을 조성하려는 도시에 국비 1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거기에 인천시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고 국비만 덥석 축낼 수 없다. 경인아라뱃길이라면 작은 비용으로 가능하겠지만, 주민이 드물다. 더위에 지치는 시민이 많은 곳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어디부터 조성하면 좋을까?

도시를 설계할 때 바람을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이제 달라야 한다. 작은 언덕과 근린공원도 바람을 생각하고 간선도로와 이면도로의 가로수도 바람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생태계의 흐름을 도심으로 연결하는 녹지축을 가로와 세로, 동심원으로 조성한다면 시민은 자신이 사는 공간에서 바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무를 충분히 심는 것에서 그칠 수 없다. 미세먼지를 적절히 제거하려면 녹지에 습지를 적절하게 조성하고 교통체계도 개선해야 한다. 자동차보다 자전거, 자전거보다 보행자들이 안전하고 편리한 길이 주택에서 상가로, 학교와 공원과 박물관과 관공서로 이어져야 한다.

바람길에 대한 상식은 우리도 부족하지 않다. 다만 인천에 어떻게 조성해야 할지 연구해야 할 일이 남았다. 산림청에서 제공하는 국비는 마중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편서풍의 상황은 물론이고 형성된 녹지뿐 아니라 앞으로 적극 조성할 녹지와 습지의 위치와 면적을 종합적으로 연구 평가해야한다. 실내 에어컨 바람에서 벗어나길 꺼려하는 시민들이 흔쾌히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사는 곳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시민이 늘어날 터이므로. 시민의 참여로 조성되는 바람길에서 폭염을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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