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도 사람이야, 사람!
상태바
활동가도 사람이야, 사람!
  • 이김건우
  • 승인 2019.05.27 0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년칼럼] 이김건우 / 서울시립대 2학년, 교지 편집장

매년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갈 즈음에 힘이 쫘악 빠진다. 특히 올해는 ‘장’ 직책을 여기저기서 맡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사람은 점점 사라지니 의욕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도 힘든 티 내지 않고 “쉬는 건 죽어서도 쉴 수 있지!”라고 씩씩하게 말하곤 했다. 찾아보니 정확하게 작년 오늘 그런 칼럼을 썼더라.
 
작년에는 영화 『청년 마르크스』를 보고 지나치게 감화되었나 보다. 영화 말미에 엥겔스가 지쳐있는 마르크스에게 “지금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해. 쉬는 건 나중에도 할 수 있어.”라고 위로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위로가 1도 되지 않는다. 결국에는 자신을 소진시키는 운동, 극소수 영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운동을 하겠다는 말 아닌가. 엥겔스야 마르크스를 경제적으로 후원해왔으니 저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젊은 공익활동가에게는 엥겔스가 없다.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사람을 갈아 넣는 운동이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런 고민은 중학생 때도 했었다. 중학생 때 나는 같은 학교 학생에게 똑같은 친구라기보다는 ‘학생인권 활동가’로 비춰졌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학생에게 인권을’이라는 슬로건으로 학생회 부회장으로 당선되었고, 무언가를 작당해 모의하다가 교무실로 불려가기 일쑤였다. 한 번은 교무실에 불려가서 교감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들었다. “넌 무슨 숭고한 일이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영웅심리에 찌든 놈일 뿐이야. 할 줄 아는 건 공부밖에 없었던 놈이 갑자기 친구들한테 인정받으니까 계속 이딴 일 하고 있는 거 아냐? 넌 지금 명예욕, 인정욕구 때문에 이러는 거야.”
 
교무실에 불려가서 한창 깨지고 나오면, 다른 학생들은 무언가를 바꿔달라고 건의하러 오곤 했다. ‘나도 너희랑 똑같은 사람인데...’라는 말이 입을 맴돌았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나는 영웅심리에 찌든 생활인이 아니라 인권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활동가이니까. 이 강박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나는 쉬면 안 되지. 나는 놀면 안 되지. 활동가니까. 이까짓 일로 힘들어 할 거면 뭐 하러 활동가 했어? 지지자 하지.’
 
이 강박은 나를 조금씩 망가뜨려 왔다. 스스로 너무 높은 기대치를 세워두고 스스로 무너지길 반복했다. 또 나보다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 비웃는 못 된 심성을 갖게 되었다. 한 번은 친구가 부모님께 용돈 안 받고 알바 시작하니 너무 힘들다고 했던 적이 있다. ‘월·화·수·금 아침부터 점심까지 수업, 월·수·금 알바, 화·목 회의, 주말에는 평일에 밀린 교지 업무, 학교 밖에서 하는 정당 행사. 또 격주에 한 번 꼴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 밤을 새기 부지기수인데, 네가 나보다 더 힘드니?’라는 말을 겨우 삼켰다.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바쁨의 크기가 다른 데도 어느새 6년 전 교감선생님과 다를 바 없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나만 이렇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정당, 시민단체, 학생자치기구 등 사람 없고 돈 없는 곳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다 이렇지 않을까? 못 된 괴물이 되거나, 이 판을 뜨거나. 물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 평생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영웅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가 영웅은 아니다. 남들보다 아주 조금 책임감과 공익심이 있는 ‘생활인’들이 활동가를 자처할 뿐이다.
 
누가 누가 더 힘든지 불행 배틀을 뜨자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을 갈아 넣어 운동을 지속하고 있지만 이런 방식의 운동이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사회의 문제점을 찾고 대안을 만들어가려는 운동이, 또는 공익을 위한 운동이 기존 사회의 문법으로, 또 사익 추구할 때의 논리로 운용된다면 모순이지 않나? 운동이 소멸된다면 누가 피해를 입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판에 더 많은 사람들, 더 많은 자원이 모여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활동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또 앞서 길게 징징거리긴 했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 부지런하고 더 똑똑해져야 함은 당연하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주위에 ‘활동’하는 사람들이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만 있다면 당연히 질책하셔야 한다. 하지만 질책만 하시지 말고 이 활동가들과 함께 해주시라. 활동가들의 활동을 소비만 하지 마시고, 각자 가능한 선에서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조금씩 내어주시라. 왜냐면 활동가도 영웅이 아니라 당신과 같은 사람이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