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터전에 자연이 스며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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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터전에 자연이 스며들었으면
  • 박병상
  • 승인 2018.07.05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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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장마가 한창일 때 민통선 걷기 행사의 일부 구간을 한 무리의 젊은이들과 걸을 기회가 있었다.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의미의 행사였다. 무리했다 싶으면 왼 무릎에 이어 오른 편까지 신호를 보내는 상황인지라 언덕이 심한 강원도 구간을 건각들과 보조를 맞출 자신이 없지만 참가하자는 선배의 권유를 마다하기 어려웠다. 통일 시대를 밝게 맞고 싶은 젊은이들의 의지에 며칠이라도 힘을 실어주자는 선배는 나보다 무릎 상태가 나쁘지 않던가.

거리나 지하철에서 옷깃이 스치는 것은 물론 시선조차 마주하기 불편한 분위기에 익숙한 마당에서 녹색공간에서 만난 일단의 젊은이들은 비가 억수 같은 상황인데 무척 밝았다. “선두 반 보!”를 외쳐도 뒤로 한없이 쳐지는 나이든 이를 환한 얼굴로 기다릴 뿐 아니라 재미없는 대화와 조언에 지루해하지 않고 진지한 경청과 질문을 이어갔다. 경기도에서 시작한 일정이 마무리될 즈음이라 그만큼 편해진 걸까? 원래 청년과 장년의 관계가 그러한 건 아닐까?

자신의 경험으로 확신에 찬 가치를 지닌 장년의 조언, 요즘 젊은이들은 반기지 않는다. 속도와 목표가 숭상되는 경쟁사회에서 경험한 성공담은 다양한 개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싶은 젊은이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다양한 생물이 어우러지는 생태공간에서 친구와 이웃, 오늘과 내일, 생태계와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이야기가 알맞다. 다채로운 생명이 숨 쉬는 강원도 양구의 비무장지대는 아름다웠다. 일단의 젊은이와 장년은 평화로운 통일로 생태공간이 보전되길 바라는 마을을 나눌 수 있었다.

감시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된 도시 공간에서 마음을 나눌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지 못하는 젊은이와 장년들은 녹색공간에서 세대의 벽을 잠시 헐었지만 휘황찬란한 초고층빌딩과 미끈한 승용차들이 아스팔트를 누비는 도시였다면 가능했을까? 그럴 리 없다. 남을 뿌리치거나 기회를 독점해 먼저 성공하는 요령을 전하는 조언이라면 모를까, 경쟁상대가 될 수 있는 남을 배려하자는 조언은 외면될 것이다. 그 따위 조언을 반복한다면 고발당할 수 있겠다.

아파트로 점철된 공간의 어린이놀이터에 어린이는 드물다. 그런 놀이터는 머지않아 주차장으로 바뀐다. 삭막한 다세대주택을 헐어내고 초고층으로 재개발되는 공간에 법적 요건에 부합한 어린이놀이터는 어린이의 행복을 고려하지 않는다. 행복은 남을 이기는 성공과 출세보다 남과 어우러질 때 샘솟는다. 선물은 받을 때보다 전달할 때 더 기쁜 거처럼.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마다 아스팔트 넓이와 건물의 높이보다 거주공간과 가까운 숲을 자랑하는 이유가 대개 그렇다.





이맘때 근린공원에 꾀꼬리가 찾아온다면 어떨까? 높은 나무가 중간 크기의 나무와 어우러지고 공원 주변에 습지가 건강하고, 그런 공원이 녹지로 연결돼 있다면 가능하다. 유럽의 많은 공원이 그렇다. 빙하기 휩쓸고 간 지형이라 식물이 다양하지 않고 그런 공원을 찾는 새들도 우리보다 단순하지만 사람 주변을 회피하지 않는다. 숲과 습지가 건강한 공원을 가족과 자주 찾으며 반가운 이웃을 만나는 도시에서 범죄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녹지가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배려하도록 돕기 때문일지 모른다.

지급이 어느 정도 가능했던 농토와 녹지를 모조리 없애고 다세대주택을 빼곡하게 지었던 도시는 초고층아파트로 점철되는 재개발을 염원한다. 그런 아파트에 거주하려는 사람들의 요구가 반영된 건 결코 아니다. 하자보수 민원이 거듭되더라도, 미분양이 속출하더라도 한밑천 잡을 수 있다고 믿는 토건자본이 도시계획을 선도하기 때문이다. 법적 요건인 어린이놀이터를 구석에 천편일률로 마련하고 녹지는 최소화한 회색공간에서 이웃에 대한 배려를 찾기 어렵다. 투자자의 이익에 최적화된 회색도시에서 반인륜적 범죄는 만연한다.

위 아랫집의 이웃은 물론이고 부모와 대화를 이어갈 줄 모르는 아이가 경쟁에 성공해 출세가도를 달린다면 우리는 행복할까? 겉보기 성공한 이는 자신을 마음으로 반기는 이웃이 없는 세상에서 행복할까? 아파트에서 청춘을 보낸 도시의 많은 장년층이 시골로 터전을 옮기고 싶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돌아갈 시골도 이젠 드물어간다. 웬만한 시골에도 초고층아파트가 촘촘한 세상이 아닌가. 지친 시민들에게 더 크고 화려하고 높고 빠른 도시는 삭막하고 위험할 뿐이다. 이제 다정한 이웃이 만날 수 있는 녹지를 심어야 한다.

이웃의 범위를 사람으로 제한하지 말자. 거주하는 내내 얼굴 한 차례 보기 어려운 위아래 아파트의 주민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 같은 터전에 함께 살아갈 다음세대 그리고 그들이 누릴 생태계도 포함되어야 한다. 다음세대의 건강과 행복을 배려하는 도시는 5분 걸어 찾을 수 있는 녹지에서 완성된다. 그런 생각으로 녹지가 울창한 비무장지대를 청년들과 걸었다. 민족을 비통하게 가른 녹지가 행복으로 다시 만나게 할 생태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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