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벗어나는 길은 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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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벗어나는 길은 급하지 않다
  • 박병상
  • 승인 2018.03.2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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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칼럼] 박병상 /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연수구 청학동 주민들은 수인선에 청학역 신설을 원한다. 다닥다닥 주차된 트럭과 소형차 사이를 뚫고 버스 정거장까지 걷자니 골목이 멀고 노선이 단순한 버스는 배차간격이 멀다. 대중교통 사정이 열악하기에 지하철역의 신설을 바라는 것이지, 결코 서울을 쉽게 다녀오려는 의지가 아니다. 승용차가 없다면 동네 밖에서 친구 만나기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서구 청라국제도시의 주민들도 지하철역 신설을 원하지만, 청학동과 그 이유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방자치를 연구하는 전문가는 해석한다. 청라 아파트 주민들은 아직 이어지지 않은 서울지하철 7호선 역사의 예정 지점을 번듯하게 표시해놓았다. 자신의 생활 본거지가 서울인 주민들은 인천지하철 2호선의 연결이 무산되어도 섭섭해 하지 않았을 것이나, 서울로 빨리 연결되는 도로의 신설을 지금도 원한다.
 
인천에 주민등록을 한 시민이 300만을 돌파했지만 자신이 인천시민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레 생각하는 이웃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땅값과 집값이 감당할 수 없게 오르면서 서울을 떠난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개발에 몰두한 결과이기에 인구증가만큼 정주의식, 다시 말해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 못했다. 지역에 뿌리 내리고 사는 사람이라면 인구증가를 덮어놓고 환영하지 않는다. 삶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니 목소리가 크지 않다. 자신을 서울시민이라 생각하는 ‘국제도시’ 주민은 다르다. 서울로 빠르게 이어지는 교통수단을 인천시에 요구하고,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은 움찔한다.



<청라국제도시>

인천의 정취를 눈물겹게 간직하는 북성포구는 시방 시민의 삶과 무관한 개발을 위해 매립될 예정이라고 한다. 인천의 문화와 역사가 천박한 돈벌이를 위해 다시금 사라질 것인가? 마음이 답답한데, 아스라한 향취를 기억하고 찾는 시민들은 북성포구에서 청라국제도시가 가깝다는 사실에 놀란다. 하지만 북성포구에서 대중교통으로 청라로 가려면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인천의 길이 지역 정서를 제대로 잇지 못하니 북성포구를 기억하는 이는 드물어진다. 서울을 향해 도열하는 길이 누비는 인천에서, 청라국제도시 주민들은 북성포구의 매립을 안타까워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오로지 값싼 아파트 때문에 주민등록을 옮긴 주민에게 인천에 대한 관심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권이라 여기는 서울로 빠르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랄 뿐, 인천의 문화와 역사 따위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관심을 일으키지 않는 인천, 살가운 이웃을 만날 수 없는 지역에 세금을 내는 사실이 불쾌하겠지. 자신의 주거지역에 호화롭게 문을 연 대형 쇼핑몰이 벌어들인 돈을 서울로 모조리 이전해도 부당하다 생각할 리 없다. 청라국제도시의 많은 주민들이 그럴 것인데 송도신도시는 어떨까?
 
송도신도시는 송남과 송북으로 나뉜다고 냉소하는 친구와 연수구의 주점에서 만날 기회가 잦다. 송남과 송북은 강남과 강북과 같은 허위의식을 반영한다. 크고 화려한 아파트단지가 새로 솟구치면서 이사한 송도신도시의 남쪽 주민은 북쪽보다 자신의 신분이 근사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도대체 무엇이 다르다는 겐가? 주택의 크기와 화려함? 자동차의 배기량? 자식의 학력? 인천 정서에 뿌리가 없는 그저 신기루일 뿐인데, 그들은 자신이 인천시민으로 여길지 모르겠다. 연수구의 주점에서 친구를 만날 일이 드물 테니 강남 호화 음식점의 이름을 더 많이 기억하겠지.



<송도국제도시>

중국산 석탄을 주로 취급하겠다던 수인선이 지상으로 갈라놓자 연수구 주민들은 왕래가 부자연스러워졌다. 이후 출마 후보마다 녹지를 조성한 콘크리트로 수인선 지상을 덮어 자연스레 이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구체적 계획은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수인선을 지하로 넣었다면 지역은 갈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남북으로 가르는 철도나 커다란 도로가 없는 송도신도시에서 웬 송남 송북 타령일까? 인천시 정주 정책의 빈곤이다. 외부자본이 주도하는 휘황찬란한 외형이 급하게 늘어나는 인구는 시민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도시에서 중요한 사항일 수 없다.
 
머지않아 시장과 구청장, 그리고 시의원과 구의원 후보가 결정되면 수많은 공약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드높일 텐데, 벌써부터 서울로 빨리 이어주겠다는 도로와 지하철 약속이 듣기 싫어진다. 송도신도시에서 서울 강남을 거쳐 청량리와 남양주 마석으로 빠르게 이어준다는 GTX는 인천에게 축복인가? 청라에서 북성포구로 편안하게 잇는 대중교통도 없는데? 송도신도시 주민들의 마음에 인천시 구도심은 들어 있지 못하는데?
 
최근 서구에서 부천을 지나 서울 홍익대로 연결하는 지하철을 추진하자고 관련 단체장들이 업무추진협약을 맺었다고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1조6천억이 넘는 예산이 들어간다는데, 그 지하철이 “인천시민 300만 명의 교통 편의와 지역발전을” 위해 얼마나 기여할까? 서울로 빠르게 접근하려는 인천시민은 인천에서 만나도 그저 서먹하기만 하다. 인천을 빠르게 벗어나는 길은 이미 지나치게 많다. 인천에서 급한 건 서울로 잇는 길이 아니다. 토박이든, 주민등록 옮긴 지 오래되지 않은 시민이든, 지역에 뿌리내리도록 이끄는 정책의 살가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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