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과 자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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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과 자괴감
  • 정세국
  • 승인 2017.02.2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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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정세국 / 인천대 산학협력중점교수

 
지옥의 나락에 떨어져 있는 한국사회를 일컫는 ‘헬조선’은 이미 시사상식 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회자되고 있다.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처럼 자산이나 소득수준에 따라 신분이 고착화되고 있는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을 빗댄 말이다. 6.25동란으로 양반과 상놈의 신분제도가 막을 내렸다고 하는데 또 다시 계층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흙수저와 금수저론으로 이어져 ‘헬조선’은 더 깊은 사회균열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청년들의 세계에서 더 많이 쓰여져 기성세대에게는 느낌의 정도가 다를 수 있으나 이에 동감하는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K-pop이나 팬텀싱어처럼 탈락자와 통과자를 구분하는 현장에서 보듯이 음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매기는 서열과 전문적인 선미안을 가지고 있는 심사위원들의 차이랄 수도 있겠다. 금수저의 호사스러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흙수저의 참담함에 대한 이해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사회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에 고착되어 그 장벽의 두께가 점점 두터워졌다는 데에 있다.

7080 시대 청년들의 장발과 청바지문화가 당시의 기성세대들에게는 반감의 대상이었음에 반해 헬조선을 비롯한 5포시대나 7포시대는 청년에 국한시켜 볼 수 없는 작금의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내집마련·희망·꿈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사회를 향해 ‘헬조선’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심각성은 다양하다. 어른은 무엇이든지 해도 된다는 사고가 지하철을 이용하는 여대생의 뺨을 때려도 무관하다는 사회를 낳고 말았다. 단지 세월호 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닌다는 이유로 가정교육까지 운운하며 때렸단다. 한달간 제주 게스트 하우스에서 스태프에게 20만원만 주는 집을 공개한 취준생 청년은 시급이 1330원이라는 계산도 빼놓지 않는다. 아이의 재능이나 적성, 성향을 파악하기보다 이웃집과 비교하기, 무조건 피아노학원 보내기 등을 하는 부모에 대한 비판은 헬조선 용어의 뒤편에 담겨져 있는 내용들이다.

이에 공감하는 기성세대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양극화가 더 벌어질 것을 우려했는지 모르겠으나 경제민주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지난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공약집에 내걸었었다. 공약집에만 넣어놓고 집권 뒤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한번도 꺼내본 적이 없는 현재의 대통령에게 헬조선 타파 기대는 이미 물 건너간 일이 되고 말았다. 경제민주화는 커녕 국정 철학도 보이지 않더니 개성공단을 단칼에 없애버리고는 통일대박이라고 하여 많은 경제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차기에 또 다른 개성공단을 영원히 만들지 못하도록 국가의 신뢰를 무너뜨린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또다시 ‘헬조선’을 만드는 일을 지금도 서슴없이 행하고 있다. 국민들이 헬조선에 살고 있음을 ‘자괴감’으로 표현하여야 하는데 대통령은 외려 자기두둔의 단어로 사용하였다.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확장되어 가고 있던 헬조선 현실에 기름을 부었고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였다.

소득이나 소비 양극화의 골이 더 깊어 가게 하는 산업발전은 과거의 가치관과 관점들이 함께 변하지 않으면 엄청난 사회 갈등의 요인이 된다. 단기간 급속 경제성장이라는 박정희 신드롬으로부터 빠져나오지 않는 이상 우리사회의 민주화는 완성도가 떨어진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발전이어야 된다는 착시로는 헬조선의 현상을 벗어날 수 없다. ‘헬조선’은 민주주의가 경제분야 만의 민주화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바로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의 완성 과정에서 치러져야할 가치는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나 사회의 도처에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7포 시대의 청년들에게는 사회진출을 시작 단계부터 피하고 싶은 끔찍한 고통을 가져다주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갖는 자괴감은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다고 해소될 것으로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다.



<정세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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