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 수수꽃다리 향기에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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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 수수꽃다리 향기에 취하고 싶다
  • 장정구
  • 승인 2016.04.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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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칼럼] 장정구 /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세월천 수수꽃다리>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봄비에 벚꽃눈 녹은 아파트단지엔 라일락(우리말 수수꽃다리) 향기 가득하다. 출근길 따뜻한 봄바람에 실려오는 수수꽃다리 향기는 학창시절 첫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절로 노랫말을 흥얼거린다.
 
인천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들이 여럿 있다. 백령도의 무궁화나무, 대청도 동백나무, 볼음도 은행나무, 강화도의 탱자나무와 소사나무, 서구 신현동의 회화나무까지..... 이외에도 인천에는 오래 되고 큰 나무들이 많다. 보호수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보호가치가 충분한 나무들도 적지 않다. 그 중 유독 필자의 마음을 끄는 나무들이 있다. 교동도의 물푸레나무, 장봉도의 소사나무, 세월천 수수꽃다리가 그들이다.
 
1년 전 인천시는 중구 자유공원의 플라타너스를 보호수로 지정했다. 자유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도시공원이다. 자유공원 플라타너스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플라타너스로 1888년 공원조성 당시 심은 나무라 한다. 비록 외래종으로 심은 거지만 우리나라 공원의 역사를 대표하는 나무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보호수로 지정한 것이다.
2년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천역 수수꽃다리가 죽었다. 외래종으로 정확한 식재 시기와 수령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학계에 우리나라 최고령으로 알려진 나무였다. 인천역은 1899년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철도의 출발지로 외국과의 소통창구였다. 인천역사(驛舍) 서울방향 플랫폼 옆에 있던 수수꽃다리는 인천역이 우리나라가 근대 외국의 문물을 처음 접한 창구였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작고한 우리나라 조림학의 거목, 서울대 고 임경빈 교수는 매년 봄이면 인천역을 찾아 수수꽃다리 향기를 맡으며 차 한잔 했다고 전한다.
 
교동도에는 유난히 노거수들이 많다. 고구리 고목근현 청사터에는 족히 2백살 넘은 물푸레나무가 있다. 성인 둘이 맞잡아야 할 정도 굵기로 마을의 무사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치성(致誠)드리던 나무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파주와 화성의 풀무레나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슴 높이에서 갈라진 세 줄기 중 하나는 부러져 잘렸고 나머지 두 줄기도 점점 갈라지고 있다. 장봉도는 인천공항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어업이 활발했던 섬이다. 어민들은 바다에 고기잡이 나가기 전 소사나무 밑에서 풍어와 무사를 기원하는 고사(告祀)를 지냈다. 금이야 옥이야 감히 범접하지 못했던, 한아름이 넘는 두 그루 소사나무가 지금은 줄 하나 둘러쳐진 채 그냥 길옆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자동차를 생산한 곳이 부평이다. 일제 강점기 자동차 생산공장 계획에서부터 1950년대 시발자동차생산을 거쳐 신진자동차와 대우자동차, 한국지엠자동차까지. 자동차도시 부평에는 인천역 수수꽃다리 이후 가장 크고 오래되었을 법한 수수꽃다리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안 굴포천의 지류인 세월천이 바로 그곳이다. 자동차를 만들던 노동자들은 봄이면 점심식사 후 세월천 수수꽃다리 그늘 아래에서 차를 마셨다.
 
산림보호법에 노목(老木), 거목(巨木), 희귀목 등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인천역이 가지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비록 고사목이지만 인천역의 수수꽃다리의 의미와 이야기를 이어가면 어떨까. 또 조사연구를 통해 그 가치와 의미가 남다른 나무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미래세대에게도 전했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엔 흐드러지게 피었을 세월천의 수수꽃다리 그늘 아래에서 소윤이와 희윤이에게 인천의 나무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장봉도 소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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