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늘 왕이나 공주일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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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늘 왕이나 공주일 수는 없어요”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0.28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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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③-대형마트 캐셔


"왜? 상대는 고객이니까. 그리고 고객은 왕이니까. 이들에게는 친절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 동등하게 시비를 가릴 권리는 없다. 분하고 화가 나지만 그런 감정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 억울해서 마음에 병이 들지만 산재보험 대상은 아니다. 직장에서 다친 것은 분명하지만 다친 마음을 꺼내 보여줄 수는 없다. 우리는 이들을 ‘감정노동자’라 부른다.”(‘대한민국에서 감정노동자로 살아남는 법’ 중에서)

홈플러스 노조는 지난 9월 사측과 협상을 했다. 당초 요구사항에는 감정수당도 언급됐으나 사측은 시급을 부서별 150원~250원(평균 3.79%인상) 올리는 데 그쳤다. 오경복 간석지부 지부장은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지만 성과는 있었다”고 평가했다.

[인천in]에서 기획연재하고 있는 ‘감정노동자의 고충을 나누다’. 간병인 조모 씨에 이어 홈플러스 간석점 노조 사무장이자 출납원(캐셔)으로 9년째 일하고 있는 김효선(36) 씨를 만났다.



남동공단에서 6년 근무하다
스물일곱에 캐셔 지원

김효선 씨는 오랫동안 남동공단에서 근무했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하루 12시간 일했는데 단순 업무라 지겨웠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호기심에 까르푸 인하점 판매원에 지원했는데 파견업체라 불안정했다. 마침 동인천 이마트에서 출납원을 뽑기에 이력서를 냈지만 떨어졌다(이에 대해 김 씨는 젊은 축에 속하는 자신이 노조를 만들까 봐 염려해 안 뽑은 것 같다고 언급했다).

함께 지원한 홈플러스에는 합격했다. 고객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집에서 지폐 세는 법을 연습하기도 하는 등 열심이었지만 조건은 열악했다. 9년 전에는 지금의 7.5도 아닌 5.5, 6.5 근무로 파트타임을 시켰다. 홈플러스는 지난 9월 점오계약 폐지를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등에 붙이고 일했다.

노동자가 8시간을 근무하면 1시간을 쉬게끔 법에 명시돼 있다. 7.5시간은 8을 넘지 않으니 휴식시간을 30분만 줘도 된다. 8시간을 계약한 사람은 실제 노동이 7시간이고 유급휴식이 1시간인데 7시간 30분, 즉 7.5시간 계약을 한 사람은 7시간 노동에 유급휴식이 30분이 된다. 점오계약 노동자에게는 30분이 잃어버리는 시간이 된다. 휴식을 줘야할 시간에 회사에서는 퇴근을 시켜버리는 것. 지난 9월 사측과의 협상에서 점오계약제가 폐지되고 8시간 근무제로 바뀌었다.


고객 친절 강조하는 회사
감시하는 ‘미스터리 쇼퍼’ 고용하기도

홈플러스는 ‘고객 친절’을 최우선시 한다. ‘친절 7대 용어’가 있고 전부 외웠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보기도 했다. “두 손으로 물건을 찍는다, 고객에게 두 손으로 드린다. 맞이 인사를 한다, 눈을 마주친다, 웃는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매장에는 미스터리 쇼퍼(감시하는 사람)가 있어서 출납원이 7대 용어를 잘 시행하고 있나 감시한다. 대부분 알바로 고용하는데 바쁜 주말에 돌아다닌다. 김 씨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감시자가 돌아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 대형마트 매출 1위는 이마트다. 2위인 홈플러스는 수익창출을 위해 ‘고객 친절운동’과 더불어 소비자 행사에 주력한다. 원플러스원(1+1), 5만원이상 구입 시 100%당첨 스크래치 복권 증정, 상품권, 라면 증정 같은 이벤트를 여는 거다. 대부분 업체에서 지원받는데 이런 행사가 있는 날 주말이면 매장이 ‘도떼기 시장’이 된다. 이마트는 이런 행사가 드물어서 상대적으로 일하기 편하고 홈플러스보다 조건이 좋다. 이마트로 옮기기를 희망하는 홈플러스 직원도 있다.

지난해 노조 결성
노조 생긴 뒤 동료와 더욱 의리 생겨

2001년에 오픈한 홈플러스 간석점은 13년만인 지난해 5월 노조를 결성했다. 지부장을 맡은 오경복 씨는 오픈 멤버로 13년째 홈플러스에서 일하고 있다.

오경복 간석지부장은 “회사에 불만이 있어도 하소연 할 데가 없었다. 그즈음 서울본부에 노조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고 의견 맞는 사람이 모여 간담회를 했다. 최대한 우리 편에서 도와주려고 하는 것 같아서 지부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효선 씨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만두고 싶었지만 참았다. 스트레스는 동료들과 술자리를 하거나 수다로 풀었다.

“캐셔가 40명 정도인데 친목 모임이 10개 정도 돼요. 띠 모임, 동갑 모임, 오픈멤버 모임, 동기 모임 등등이요. 고객한테 받는 스트레스를 동료랑 푸는 거죠.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나이 차가 있어서 언니들이랑 별로 안 친했어요. 노조 생긴 뒤 돈독해졌죠. 어려울 때 같이해야 진정한 친구잖아요. 노조활동 하면서 의리파라고 할까 성숙해진 모임이 된 것 같아요.”


계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고객 눈치 보는 데 감정소비

김효선 씨 역시 동료나 상사보다는 몇몇 악성고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계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고객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고객이 어떻게 할지 몰라 불안했다. 어떤 고객은 웃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어떤 고객은 자신이 계산벨트 위에 물건을 다 올려놓은 뒤에 찍으라고 명령하듯 말한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을 경우에는 서둘러 일을 해야 하는데 난감할 수밖에 없다.

“홈플러스는 행사가 많은데 고객이 가격을 잘못 보고는 영수증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해요. 제가 맞다고 하면 ‘너가 당장 가서 확인하고 와라’고 소리 지르기도 하죠. 슈퍼바이저라고 계산대 근처에서 고객과 출납원의 보조역할을 담당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욕을 먹는 경우가 많죠. 가격을 빨리 확인하고 오지 않는다며 보상해 달라는 사람도 있어요.”

결혼하지 않은 김 씨에게 ‘아줌마, 아줌마’ 하면서 부르는 사람, ‘윗사람한테 얘기해서 자르네 마네' 큰소리치는 사람 등등. “관리직도 당연히 고객 편이죠. 어차피 내 편은 없으니 고객 비위를 맞춰야 해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나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죠.”

감정노동자 이슈화 된 후
진상 고객 줄었다

김 씨는 요즘 10시 반에 출근해서 7시에 퇴근한다. 12시(자정) 마감조를 할 때는 친구 만날 시간도 없었는데 요즘에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 데이트도 한다. 하지만 출납업무 외에 노조 사무장도 맡고 있어 바쁜 날이 훨씬 많다. 신생 노조라 체계가 없어 백운역 노동자교육기관에 가서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컴퓨터도 쓰고 게시판도 만든다. 지금의 남자친구도 거기서 만났다.

“노조는 단결이 중요하거든요. 조합원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근무시간이 달라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요. 11월 13일에 ‘카트’가 개봉하잖아요. 조합원들과 같이 보려고 해요.”

여전히 일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하지만 김 씨는 이전보다 고객의 의식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한다.

“방송이나 언론에서 여러 번 이슈화 됐잖아요. 힘든 점도 부각되고요. 이전에는 고객이 왕으로 대접받으려 할 때가 많았어요. 자기가 번 돈을 쓰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원하는 만큼 대우해주지 못했다고 여기면 화를 내고요. 감정노동자가 이슈화 된 이후 진상이 많이 줄었어요.(웃음)”

내년쯤 결혼할 계획이라는 김효선 씨에게 결혼한 뒤에도 일을 할 거냐고 물었다. “해야죠. 노조 활동을 잘릴 결심까지 하고 시작한 거거든요. 청춘을 여기에 다 바쳤는데 노조가 생겨서 힘이 돼요. 변화하는 게 보이고 당당해질 수 있으니까요.”

라면을 여섯 번이나 끓이게 한 것도 모자라 손찌검까지 한 지난해 라면 상무 사건. 행위 전말을 밖으로 유출한 것은 올바른 고객관리가 아니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회사는 근본적으로 고객 편이다. 고객이 있어야 직원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결코 감정노동자를 위해 고객을 걷어차 버릴 수 없다.

하지만 고객이 늘 왕이나 여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객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와 도의를 저버리면 스스로 대접받기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는 내가 고객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역지사지‘ 정신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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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① 한국인 대다수가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② 간병인 조모씨, “딸 같은 간호사가 무서워서 벌벌 길 때도 있어요.”
③ 대형마트 캐셔, “고객이 늘 왕이나 공주일 수는 없어요.”
④ 미추홀콜센터 상담원, “‘블랙 시민’ 케어도 우리 몫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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