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구를 위한 저층주거지관리사업인가?
상태바
[기자수첩] 누구를 위한 저층주거지관리사업인가?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6.30 0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갈 곳 없는 주민 포용하는 사업 진행돼야

동인천역세권 재정비촉진사업지구 개발로 지정됐던 중구 인현동 7만4천7㎡(6구역) 일대. 지난해 1월 재정비촉진사업지구에서 해제된 후 인천시가 2013년도 저층주거리관리사업지구로 지정해 현재 주거환경 관리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애초 국토부에서 이 일대에 행복주택을 짓기로 하고 정비계획을 수립했으나 중구의 저층주거리관리사업과 겹치는 구역이 있어서 현재 행복주택 용역은 중지 상태다. 이달 말까지 국토부에서 결정이 나지 않을 경우 중구청은 자체 계획을 세워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중구청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주민 중심의 마을만들기 저층주거지관리사업 추진을 위해 대여섯 차례 주민설명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했고, 폐공가 철거 자리에 작은 공원, 마을회관, 도로, 주차장 등을 짓기로 했다. 그러나 사업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 인현동 1번지(일명 쪽방촌) 호정임 할머니 댁.(사진 왼쪽) ⓒ 이재은

 

인현동 1번지(참외전로 15번길 11-1) 집을 소유하고 있는 김 모 씨는 집에 거주인이 있었는데도 구청에 집을 팔았다. 거주인은 호정임 할머니(97). 100세를 앞두고 있는 호정임 할머니는 주인 김 모 씨의 배려로 지난 3월부터 이 집에 살기 시작했다.
 

주인은 올해 4월 28일, 구청과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 작성 당시 호 할머니는 전입자로 신고된 상태였다. ‘공가 매입’은 그 집에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 가능하다. 중구청의 업무 실수로 공가 처리된 것은 아닌지 확인해봤다.
 

중구청 원도심재개발팀 김종달 실무관은 “(세입자 확인은) 계약 당시 기준이 아니라 ‘주거환경관리사업 지정고시일’(2013. 11. 15.)로부터 3개월 동안 세입자가 있는지 없는지가 기준”이라고 밝혔다. 호정임 할머니는 3월 초에 전입신고를 했고, 지정고시일 이후 3개월간 그 집에 전입자가 없었기 때문에 서류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얘기였다.
 

공가 매입시 구청에서는 수도와 전기 계량기가 돌아가는지, 실제 사람이 사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 조사를 한다. 담당자가 방문했을 때는 문이 잠겨 있었고, 계량기 등은 집안이 있어 확인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살고 있음에도 집주인이 중구청에 공가라고 전달한 것이 문제일까. 집주인 김 모 씨는 지난 2월, 호정임 할머니의 어려운 사정을 전해 들었다. 그는 호 할머니에게 “내가 나가라고 할 때까지 집에서 공짜로 살아도 좋다”고 했다. 돈이 오고간 것도, 서류를 작성한 것도 아니었다. 구청과 매매 계약을 한 뒤 주인은 호 할머니에게 집을 비워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호 할머니도 주인의 선의를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방을 빼라고 할지 몰랐다. 갈 곳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며 속을 태웠다. 연세가 많고, 자식들도 할머니를 돌봐줄 사정이 못 된다고 했다.
 

동네 주민들이 할머니가 살 만한 곳을 구할 때까지 철거를 미룰 수 없는지 알아봤지만 구청에서는 공가 매입 시 1, 2달 안에 철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현동 쪽방촌은 오래된 건물이 많아 안전 문제도 있고 빈집에 낯선 사람이 드나들 염려도 있기 때문이다.
 

중구청은 이 달 초 한 달의 유예기간을 주며 기간 안에 세입자를 내보낼 것을 주인에게 통보했고 불이행 시 계약이 파기된다고 알렸다. 줬던 돈을 되돌려 받고 매매를 취소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집주인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몸을 다쳐 돈이 필요했고, 매매 역시 갑자기 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 김 모 씨는 “할머니를 들이기 전에도 집을 팔 마음이 있었다. 애초에 언제까지 여기서 사세요, 하고 기간을 둔 것도 아니고 내가 돈을 받고 세를 들인 것도 아니니 나가주는 게 맞다. 어려운 사정은 알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다. 나도 이 일로 피해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갈 곳을 찾지 못하는 호 할머니의 사정은 인천쪽방상담소에서도 알고 있었다. 박종숙 인천쪽방상담소장은 “호정임 할머니는 지난 2월 이사할 때 이삿짐 나르기, 도배, 장판, 지붕 등을 도와줬다. 의료비, 병원 등은 후원과 연결해준다든가 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집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덧붙여 “쪽방상담소 예산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530여 가구를 담당하고 있는데 일일이 도와주기 쉽지 않다. 게다가 더 처지가 어려운 사람도 많다”면서 중구청에서 좀 더 여유를 갖고 대처해주기를 기대했다.
 

낡은 집들의 안전문제도 해결하고 세입자를 포함한 거주자들이 개발로 인한 삶의 터전을 잃지 않도록 추진하는 사업이 바로 저층주거지관리사업이다. 그러나 현실은 낡은 집을 사들여 주민 편의시설과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명분으로 호 할머니 같은 주거 약자들이 급작스럽게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행정 편의주의보다 먼저 주거 약자들을 위한 주거대책부터 마련하는 섬세한 배려 행정을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